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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종의 압도적 고음, 전석 매진 '투란도트'의 전율

 푸치니의 유작 오페라 '투란도트'가 2026년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22일 개막한 이번 공연은 초연 100주년을 맞이해 고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로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연출과 무대디자인을 동시에 맡은 정선영은 과거의 강압적인 구애 방식을 버리고, 자발적인 헌신과 평화를 강조하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극 전반에 녹여냈다. 이는 여성 노예의 희생이나 강제적인 키스 등 현대 관객이 수용하기 어려웠던 지점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공연의 가장 큰 수확은 단연 세계적인 테너 백석종의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해외 무대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전막 오페라의 진수를 선보였다. 전쟁 난민들 사이에서 칼라프 왕자로 등장한 그는 첫 소절부터 명징하고 투명한 고음을 뿜어내며 객석을 압도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소리가 아닌, 자연스러운 발성과 풍부한 성량으로 가사의 의미를 정교하게 전달하는 그의 가창은 왜 그가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의 러브콜을 받는지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에바 프원카 역시 상처 입은 공주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그녀는 강력한 성량과 선명한 고음을 바탕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겉모습 뒤에 숨겨진 복합적인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여기에 류 역의 황수미와 티무르 역의 심인성 등 주역들의 탄탄한 가창력이 더해지며 극의 몰입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중국 대신 핑, 팡, 퐁 역을 맡은 성악가들의 유연한 연기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 분위기에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음악적 완성도를 뒷받침한 것은 로베르토 아바도가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완벽한 호흡이었다. 초반 군중 장면의 복잡한 리듬을 안정적으로 소화한 오케스트라는 '모리화' 합창 등 서정적인 대목에서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노이 오페라 코러스와 CBS소년소녀합창단은 대규모 군중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자연스러운 동선과 가창으로 소화하며 무대를 꽉 채웠다. 음악과 연출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정교한 앙상블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시각적인 연출 또한 이번 프로덕션의 백미로 꼽힌다. 부식된 거대 함선 모양의 요새는 투란도트의 닫힌 마음과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동시에 출연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다층적인 무대로 기능했다. 무채색 위주의 세련된 전통의상과 강렬한 색채의 조명은 시각적 대비를 극대화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잿빛 현실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푸른 천 조각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상징성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정선영 연출가는 자막 대본을 새롭게 집필하는 파격을 통해 예술을 통한 미적 교육이라는 이상을 실천했다. 칼라프가 투란도트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의 평화를 호소하는 결말은 타자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던 과거의 서사를 뛰어넘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칼날과 창촉이 사라진 무대 위로 푸른 하늘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은 오페라가 단순한 고전의 재현이 아닌, 동시대적 가치를 담은 살아있는 예술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