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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석 비워두고 무대에서…세종문화회관의 이상한 초대

 공연장의 전통적인 공식이 깨졌다. 배우와 연주자가 서야 할 무대는 관객의 차지가 되었고, 3천 석의 객석은 텅 빈 배경이 되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인 '세종 인스피레이션'의 첫 프로그램, '리딩&리스닝 스테이지'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개념을 뒤집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 행사는 일반적인 공연 관람이 아닌,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서가에 꽂힌 시집 중 한 권을 골라 자유롭게 읽고, 극장 전체를 감싸는 엄선된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에 집중했다. 이러한 독특한 콘셉트는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티켓 오픈 한 시간 만에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프로그램의 구성은 치밀했다. 무대 위에 비치된 27권의 시집과 네 가지 테마로 나뉜 7곡의 음악은 모두 세종문화회관의 2026년 라인업과 연결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시합창단의 봄 공연은 봄의 정서를 담은 시집과, 한 미용실을 배경으로 한 연극은 회복에 관한 시집과 짝을 이루는 식이다. 이는 관객에게 올해 공연들의 정서적 결을 미리 느껴보게 하는 감각적인 안내서 역할을 했다.

 

단순히 읽고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술가와 직접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박연준 시인과 서울시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마주 앉았다. 박 시인은 자신의 시와 발레가 '불가능한 아름다움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하며, 서로 다른 예술 장르가 공유하는 본질적인 연결고리에 대한 대화를 이끌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평소 시를 멀리했던 관객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에 깊이 몰입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으며, 평생 오를 수 없을 것 같던 대극장 무대를 직접 밟아봤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일부 관객은 실제 공연의 일부를 맛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성공을 발판 삼아 앞으로도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계속할 예정이다. 극장 곳곳을 이동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워크 어바웃 콘서트', 무대 위에 누워 온몸으로 발레 음악을 체험하는 '리스닝 스테이지' 등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인스피레이션' 시리즈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